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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나 채 칼럼] 페터믹에 생각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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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시면 그냥 지나치시는 법이 없었다.

집동네 시장에서 두다리가 없는데 다리에다 오래된차바퀴로 만들어진 고무타이어로 길게늘여서 하체를 커버하고는  배로 시장바닥을 기어서 밀고 다니며 카셋트를 팔던 병식이 오빠

( 엄마는 우리집 막내딸인 나에게 병식이더러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다.) 있었다.

물론 엄마가 보는데에서는 병식이를 불러야 한다면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겨우 병식이 오빠라고 불렀지만 엄마가 보이지 않으시면 절대로 오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병식이는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하고 함께 살았는데 병식이가 시장바닥을 돌면서 카셋트 팔아온 돈으로 

할머니와 함께 먹고 살던 기억이 난다. 

우리동네에서 조금 가면 동순네 문간방에

시장안에 비좁은 우리안에 가두어놓은닭을잡아서 파는집 옆에

밤새 부풀은 밀가루를 반죽하여 도너츠를 만들어 파는 영경이네 집이 있었다.

영경이는 9살이고 두동생은 아직 어려서 영경이 엄마와 아빠가 일하러 가시면 

영경이는 어린나이에 두동생들을 씻기고 먹이느라 그가냘픈 몸이 더까맣게 변하는것 같았다.

엄마는 아이들이 자기네들끼리 지내는모습이 게 안스러웠는지 우리집에서 별미라도 할냥이면  

영경이네 세아이들을 집으로 불러오셔서 엄마가 만들어 음식도 먹이고 

아이들이 다른곳으로 가지 않게 살펴봐주고 하였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음식을 잘하셔서 엄마가 만드신것은 그무엇이든 맛이 있었다.

겨울이면 감자를 갈아서 감자전도 만들어주시고 여름에는 아카시아 꽃을 따셔서 

아카시아 설기도 해주시고 봄이면 쑥을 뜯어다가  밀가루로 개떡도 만들어주시던 기억이 새롭다.

엄마가 만든 음식중 특별히 여름이면 생각나는 간식은 막내오빠를 시켜서 활짝핀 아카시아 꽃을 잔뜩 따오라고 시키시고는 그아카시아 따온것을 물로 깨끗이 씻으신다음 쌀가루를 휘휘 뿌리셔서 

찜통에 찌셔서 커다란 소쿠리에 담아내신후 우리 형제들과 병식이 오빠

그리고 영경이와 두동생에게 먹이시고는 했다.                 

엄마가 만드신 간식중에는 엄마가 밀가루에 이스트를 넣고 진빵을쪄주시기도 하셨는데  

지금도 엄마의손맛이 그대로기억에남 는다.

가을이되어 추석이될라치면

아버지는 송편을 아버지 손바닥 만하게 만드시면서 안에는 고명을 넣으셨는데 

그 고명은 파란콩을 찐것으로 추석이 한참지나고 나서 광속안에서 꾸들꾸들 말리어져가는 

송편안에 있는 달콤한 콩을 먹는 즐거움은 지금도 그리움이다.

우리가족들이 음식을 먹으려고 밥상주위에 둘러 앉아있으면 영경이 형제들이 창문너머로 

우리집을 기웃거리기도 하여서 나는 창문을 수건으로 가리기도 하다가 

엄마에게 꾸지람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수건으로 창문을 가리려는 나를 불러 세우시면서 말씀을 하셨다.

! 막내야, 음식은 나누어 먹어야 맛있는 법이란다.

그리고 영경이네는 엄마 아빠가 장사 나가시고 안계시잖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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